플랫폼은 기차를 타고 내리는 정거장이었습니다. 승객을 태워야 하는 기차와, 기차를 필요로 하는 승객을 이어주는 일종의 만남 장소였죠. 이 플랫폼이 기술 발전에 힘입어 디지털이라는 가상의 공간에도 구축되기 시작했습니다. 소비자를 필요로 하는 판매자와, 물건 혹은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소비자가 디지털 세계에서 만나 직거래할 수 있는 만남의 장이 마련된 겁니다. 과거엔 회사를 통해 일감을 구했다면, 지금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개인이 직접 일감을 찾고, 소비자도 직접 필요한 물건과 노동력을 살 수 있게 됐습니다. 이 플랫폼 경제는 배달, 가사 노동, 번역, 운동, 빨래 등 우리의 아주 일상적인 삶 곳곳으로 스며들었습니다. 바야흐로 '플랫폼 경제 시대'의 탄생입니다.
이 플랫폼 노동자의 숫자는 팬데믹을 계기로 급속도로 늘어났습니다. 2020년엔 정부에서 나서, 플랫폼 노동 규모를 파악하기 위한 통계 기준을 처음으로 만들었습니다. 고용노동부와 한국고용정보원이 조사한 ‘플랫폼 종사자 규모와 근무실태’를 보면 플랫폼 노동자는 2020년 179만 명에서 2021년 약 220만 명으로 1년 만에 약 40만 명 늘어났습니다. 특히 이 가운데 2030 청년의 비율이 55.2%로 전체 취업자 중 청년의 비율(34.7%) 보다 월등히 높았습니다. 플랫폼 노동으로 편입되고 있는 젊은 층의 숫자가 적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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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임금을 받는 대신 자신이 일한 만큼 버는 청년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할 텐데요. 이들이 쉼 없이 소처럼 일만 하면, 어쩌면 이전보다 더 벌 수도 있겠지만, 일하다 다치면 산재 보험을 못 받고, 일을 못 하게 돼도 실업 급여를 받을 수 없게 됐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1년 넘게 일하다 그만둬도 퇴직금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월급과 사회적 안전망을 ‘건당 수수료’와 맞바꾸는 시대로 접어드는 셈입니다. 정규직은 점차 줄어들고, 이런 형태의 노동이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시대, 미래팀은 플랫폼 노동 같은 형태의 노동을 ‘불안정 노동’으로 진단한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백승호 교수와 만나, 기술 혁신의 시대 미래 노동의 모습을 깊이 들여다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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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세 가지 지표를 조합해 노동의 불안정성을 평가합니다. 고용, 소득, 사회적 보호(안전망) 이렇게 세 가지요. 세 가지가 모두 불안정한 경우, 두 가지만 불안정한 경우, 한 가지만 불안정한 경우, 모두 안정적인 경우 이렇게 나눠서 이 일이 얼마나 불안정하다,라는 평가를 내립니다. 중앙대 이승윤 사회복지학과 교수님은 불안정 노동을 ‘액화 노동’이라고도 표현했습니다. 출퇴근 시간을 비롯해 법으로 일의 규격이 정해져 있는 정규직의 노동을 일종의 고체로 비유한다면 고체가 녹아 흘러내려 경계가 흐려진 모습의 노동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플랫폼 노동이나 아르바이트, 파견이나 용역 노동자 같이 파편화되어 있는 노동들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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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고용, 소득, 사회적 보호 세 가지가 다 불안한 사람들이 속해 있는 직업군이나 연령군에는 어떤 특징이 있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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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를 해보면 트렌드가 살짝 바뀌었는데 예전에 청년들 같은 경우에는 세 가지가 다 불안정한 그룹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 2007년, 2008년 경제 위기를 기점으로 해서 그 전후가 확 바뀌어요. 그러니까 청년들만 딱 놓고 보면 세 가지가 다 불안정한 그룹이 상당히 많아졌고, 그다음에 세 가지가 또 다 안정인 그룹도 많아졌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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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양극화된 거죠. 청년들이 2007년을 기점으로 양극화되는 양상을 보이는데, 청년이 다 불안정하다, 이렇게 단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청년 내에서도 계급화가 생기고 있다’고 말해야 보다 정확합니다. 특히 기계화, 플랫폼화로 인해 기술 발전 과정에서 새롭게 등장한 불안정한 층들이 청년들 일자리에 많이 몰려 있는 것이죠. 또 청년들은 IT에 친화적이다 보니 플랫폼을 통해 보다 손쉽게 파편화된 일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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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기술 혁신으로 이런 불안정 노동자의 수가 급격하게 늘고 있다,라고 접근해도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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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격하게'까지는 아직 아니에요. 플랫폼 노동자의 수만 보더라도 아직 전체 취업자의 10%까지는 안 되는 수준이긴 하거든요. (기자 주: 취업자 수 증가세보다 플랫폼 노동자 수 증가세가 더 가팔라 2022년엔 처음으로 플랫폼 노동자 수가 취업자 수의 10%를 웃돌았습니다.) 물론 그것도 적은 수치는 아니죠. 기술 발전이나 플랫폼의 등장이 본격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노동시장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게 2016년이거든요. 5년 정도 사이에 수가 두, 세 배 늘어났다고 보면 증가세는 상당하죠. 전체의 크기로 보면 아직 크지는 않지만 앞으로 폭발적으로 더 성장할 가능성들이 상당히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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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로봇의 등장과 자동화로 플랫폼 노동의 다수를 차지하는 배달업 종사자가 향후 줄어들 가능성도 있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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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배달 같은 경우는 로봇이 진출하기 시작했어요. 이미 일부 대학에서는 학내에서 로봇 배달을 많이 하고 있다고 하고요. 그래서 배달에 몰려 있는 플랫폼 노동자들이 일자리에서 밀려나서 실직돼 버리거나 또 다른 불안정 노동으로 흘러가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어요. 영화 <기생충>에 인형 눈알 붙이기가 나오잖아요. 이들이 AI 시대의 ‘인형 눈알 붙이기’ 같은 일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죠. 젊은 층이 많은 배달 플랫폼 종사자들은 이미 IT 친화적이기 때문에 플랫폼에 이력을 올리고 선택이 되면 가서 일하는 식으로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면서 다른 여러 플랫폼들을 전전하게 될 것 같아요. 그런데 배달 플랫폼은 그나마 다른 플랫폼에 비해 임금이 높은 수준이었는데요. 여기서 다른 플랫폼 노동자로 다시금 전전하게 된다는 얘기는 소득이 지금보다 더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이야기이기도 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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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물가도 오르고 집값도 오르고 여러 가지 삶의 기본적인 조건을 충족시키기 점점 더 어려워지는 사회인데, 불안정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은 충분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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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망이라 함은 노동시장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실업이 됐든, 산재를 입었든, 다쳤든, 나이가 들었든, 그래서 일할 수 없어서 떨어지는 사람들을 그물망으로 잡아내는 개념이잖아요. 이 그물망이 촘촘하면 다 잡아낼 수 있는데 그물망이 지금 새우잡이 그물망이 아니라 고래잡이 그물망인 거예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안전망 밑으로 다 빠지게 되어 있어요 지금의 시스템으로 보면.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 안전망을 촘촘히 하는 게 필요한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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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노동기구(ILO) 같은 국제기구의 보고서들을 보면 반차별적인 사회 안전망을 우선 원칙으로 삼고 있어요. 예컨대 고용 형태에 따라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자, 액화 노동자들을 차별하지 않는 사회적 안전망, 이들에게 동등한 대우를 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이라는 원칙을 세워 놨거든요. 그 원칙이 의미하는 바가 뭐냐 하면요, 지금 우리는 차별을 하고 있어요. 플랫폼 노동자들 같은 경우 분명 실제적 일의 형태로는 플랫폼에 종속되어 임금 근로자처럼 일을 하는데 산재보험에 가입하려고 했더니 보험료 절반, 혹은 전체를 “네가 내”라고 얘기한다는 거죠[1]. 또 연금 같은 경우에는 9퍼센트를 다 내라고 얘기를 한다는 거죠.[2] 차별적인 요소들이 있는 거예요. 그런 차별적인 요소들을 없애고 동등한 처우를 하라는 게 큰 원칙입니다. 그래서 추진된 제도가 ‘전 국민 고용보험’[3]이었는데요. 전국민고용보험에 13개 직종까지 가입할 수 있게 했는데, 그 외 나머지 대부분 직종들은 아예 가입을 못 하고 있어요. 그래서 플랫폼 노동자들에 대해 고용보험이라도 시작해 보자는 개혁안이 지난 정부에서 논의되기도 했던 것이죠. ILO에서는 사회보험 내에서 차별받지 않게 동등하게 처우를 해주는 원칙을 지키고, 이것만으로 사회 안전망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조세에 기반한 보편적 사회적 보호 시스템을 추가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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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재보험은 근로기준법상 재해보상제도를 보험화한 것으로 근로자는 부담의 책임이 없다. 보험료 전액을 사용자가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2] 사업장가입자의 경우 연금보험료율은 기준소득월액의 9%이며, 근로자와 사용자가 각각 절반씩(4.5%) 부담해야 한다. [3] 전국민고용보험: 문재인 정부는 ‘전 국민 고용보험’이란 취지 아래 2020년 12월부터 고용보험 대상을 확대했고, 대리기사 배달기사 등 18개 특수고용직이 적용을 받고 있다. 산재보험은 지난 8월 전 속성 요건이 폐지되면서 플랫폼 노동자도 의무 적용 대상이 됐다. 하지만 실상을 보면 보험 급여가 너무 적고 실업급여는 수급 문턱이 높아 실제 이용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이 지난 8월 플랫폼 노동 시민사회단체가 주관한 기자간담회에서 지적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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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불안정 노동자들의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하기 위해서는 재원이 필요할 텐데요. 세금을 투입해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선 사회적 합의의 과정이 꼭 필요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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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필수적이죠. 사회적 합의의 방법 중에 숙의 공론조사라는 게 있는데요. 우리 사회에서도 그런 것들을 좀 시도해 볼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해요. 예컨대 이런 방식이에요. 개혁안에 대해서 찬반 입장을 가진 사람들을 골고루 뽑고요. 그 사람들한테 자료를 주고 각자 공부해서 개혁안에 대한 찬성, 반대 입장 조사를 하게 한 다음에 1박 2일이나 2박 3일 그룹을 지어서 전문가들 강의도 듣고, 그룹 내 토론도 하고 민주주의적 숙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죠. 그런 과정들을 거친 다음에 최종적으로 그 의견의 변화들을 확인하는 거죠. 이렇게까지 했는데 참가자들이 개혁안에 대해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힘든 것이고요. 이런 숙의 과정을 일회성으로 하는 게 아니라 1년 내내 여러 그룹을 대상으로 지속하는 거죠. 한국 복지국가의 개혁이 필요하다면 이런 숙의 공론 과정을 거치는 게 필수 과정 같습니다. 설문조사 한번 해서 시민들이 찬성한다, 안 한다, 이렇게 하고 끝낼 것이 아니라 숙의 공론조사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야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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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마지막으로, 우리 한국 사회의 대표적 불안정노동자라고 한다면 어떤 사람이라고 보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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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노동자를 가장 먼저 꼽고 싶어요.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고용과 소득 측면에서 모두 정말 열악한 삶을 살고 있거든요. 두 번째로는 기술 발전과 관련해 생겨나는 플랫폼 노동의 종사자입니다. 플랫폼 노동을 흔히 두 가지로 구분을 합니다. 지역 기반 플랫폼, 웹 기반 플랫폼 이렇게요. 지역 기반 플랫폼은 찾기 쉽죠. 배달 기사, 가사 서비스, 대리 운전, 주부, 청소 연구소 같은 것 들이예요. 지역 기반 플랫폼 노동자는 사람들 눈에 잘 보이기 때문에 그래도 그동안 많이 조명이 됐었죠. 그런데 웹 기반 플랫폼은 실제 일하는 이 노동자들을 실제로 보기가 상당히 어려워요. 예를 들면 숨고[4] 같은 플랫폼에서 일감을 받아 일하는 사람들이요. 예컨대 디자인 전공 친구들이 이런 플랫폼에서 일감을 찾아 저숙련 저임금 노동을 하다가 선택되면 고숙련 디자인 업계에 종사하게 되는데요, 이게 정말 하늘에 별 따기예요. 이 노동자들은 경쟁의 한 복판에 서 있지만 어느 누구도, 어떤 법도 보호하지 않는 사람들인 것이죠. 다이어트 앱에 음식마다 칼로리를 일일이 기록해 올리는 것 같은 레이블링 플랫폼 워커, 일명 ‘인터넷 눈알 붙이기’에 종사하는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죠. 눈에 보이지 않는 이런 웹 기반 플랫폼 노동자들은 잘 조명되지도 않는 게 현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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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숨고: ‘숨은 고수’의 준말. 2015년부터 서비스되고 있는 전문가 매칭 서비스 플랫폼이다. 필요한 서비스에 대한 간단한 요청서를 애플리케이션에 작성하면 다수 전문가들에게 견적서를 받아 이를 비교해 선택할 수 있도록 한 플랫폼이다. 각 분야 프리랜서 시장을 제공하는 비슷한 플랫폼으로 크몽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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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세계의 다양한 음식을 손가락 한 번만 까딱하면 내 방에서 주문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장을 보거나 택시를 탈 때, 세탁물을 맡길 때, 집안일을 할 때, 우리는 평범한 일상에서 더 이상 ‘플랫폼’과 ‘플랫폼 노동자’가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 어려워진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플랫폼 경제 시대’의 한 복판에 살고 있는 우리가 내 손 안의 편리함과 맞바꾸고 있는 건 사회적 안전망이 사라진 불안정 노동일지도 모릅니다.
특히나 사회적 기반이 부족한 청년층이 그 불안정 노동 속으로 속속 뛰어들고 있다는 것을 여러 통계 수치가 방증하고 있습니다. 소비자가 더, 더, 편리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데만 방점이 찍힌 사이, 불안정 노동의 규모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는데요. 과연 우리 사회는 그들이 인간답게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안전망을 갖추는 데에도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다시 한번 되돌아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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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민정 기자 compass@sb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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