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에서부터, 지난달 19일의 서부 지법 폭동 사태까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폭력 사태들이 이어졌는데요. 어떻게 하다가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까지 일어나게 된 것일까요?
지난 20년 동안 한국 극우의 진화에 관심을 갖고 연구해 온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를 만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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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이후에 나타난 전조들이 있거든요. 독재, 전쟁, 파시즘 이런 것들인데, 우리에게 살짝 보여주고 간 느낌이에요. ‘이런 미래가 올 수 있다 몇 년 안에’ 이번에는 눌렀는데 우리 사회가 간과하거나 극복하지 못하면 ‘몇 년 안에 최소한 이 중에 하나는 올 수 있다.’ 그런데 그 말은 ‘우리 사회가 잘 대처한다면 안 올 수도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또 시기적으로는 이러한 현상이 특히나 트럼프의 미국, 또 극우 정당이 집권을 노리고 있는 독일의 시기하고 겹친 것도 잘 생각해야 합니다. 미국의 공화당이 불과 4년 만에 트럼프화되고 한국에서도 국민의 힘이 사실상 극우 정당화되고 있는 이런 추세이기 때문에, 이게 함축하는 바는 어떤 나라에서 독재화가 돼도 국제사회의 압력이 없어요 이제는. 그래서 앞으로 몇 년은 우리 사회가 정말 이거는 좌우, 보수, 진보를 떠나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우리 사회의 생존의 문제다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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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저희가 SDF2022에서 ‘다시 쓰는 민주주의’를 다루면서 ‘정치 양극화’나 ‘포퓰리즘’에 대해 경고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약화되고 있다는 데이터는 확인했었는데요. 그때도 우리나라에 이렇게까지 극우 세력이 커질 것이라고는 상상을 못 했습니다. 전조 현상들을 보셨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 얘기를 조금만 더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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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타나고 있는 여러 전조들, ‘독재의 전조’, 또 그것과 연관된 ‘전쟁 발발의 위험’, 또 ‘극우 파시즘’, ‘극우 테러리즘’, 이런 것들이 하나의 큰 빙산을 수면 아래에 갖고 있다고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이러한 영향을 미친 (극우) 유튜브 같은 신뢰할 수 없는 언론의 영향이 분명히 있습니다만 그 저변에 훨씬 더 넓은 조직적인 사회 세력이 있는 거죠. 제가 ‘사회세력’이라고 쓰는 것은, 단일한 집단, 조직체가 아니라 굉장히 이질적인 집단, 수많은 조직들이 때로는 연대하고 어떤 경우에는 서로 싸우고 흩어지기도 하는데, 우리가 ‘극우’라고 명명할 수 있는 그런 세력들이 있는 거죠.
그리고 이런 세력이 형성되어 온 역사가 있습니다. 그 출발점을 저는 1987년 민주화의 부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가 민주화한 지 38년째인데요. 그 정도 됐지만 ‘민주화로 인해 더 이상 국가권력이 혹은 정치권력이 자신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냉전, 반공, 극우적인 질서를 보장해 줄 수 없는 정치환경이 됐다’고 생각하는 세력들인 거죠.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유권자의 신뢰를 받기 위해 경쟁을 하는 구조이고 승자와 패자가 있고 패자는 패한 것을 인정해야 다음 선거에서 내가 또 승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룰이잖아요. 그래서 근본적으로 민주주의는 ‘불확실성이 있는 게임’입니다. 그 불확실성을 모든 주체가 받아들여야 룰이 지속되는 게임인데, 극우를 지지하는 세력들은 그런 불확실성이 굉장한 불안이라 느끼는 거죠. ‘우리가 그동안 수십 년 동안 가져왔던 어떤 질서가 정권이 바뀌면 위협을 받을 수 있겠다’ 그런 생각에서부터 민주화 이후 극우 세력들의 자기 조직화가 이뤄져요.
그러다 본격적으로 확장되는 계기가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 그 이후에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으로 기존의 야당이 10년 동안 집권을 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뉴라이트 단체들, 또 같은 시기에 올드라이트라고 부를 수 있는 반북, 반공 이런 단체들도 많이 생겼어요. 혹은 기존부터 있었는데 정치활동까지는 하지 않던 단체들이 정부 지원금으로 유지되면서 극우적인 정치활동을 하는 단체로 전환된 결정적인 전환점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 시기 동안 우리가 알고 있는 매주 광화문에서 태극기 집회를 열어온 거죠. 태극기 집회에 오신 분들이 다 극우는 아니에요. 단순히 문재인 정부에 반대해서 오신 분들도 많이 있어요. 하지만 그 태극기 집회를 주도했던 굉장히 격한 극우 세력들이 연단을 독차지하고 극우적인 수사, 발언들을 쏟아내고 하다 보니 ‘태극기 집회’에 참석하는 분들이 다 극우는 아니지만 점차적으로 극우적인 주장이나 언어에 익숙해지고 때로는 동조하는 경향들이 지난 몇 년 동안 계속 진행이 됐다. 그런데 당시에는 우리가 ‘보수 정당’이라고 말하는 국민의 힘이 어느 정도로 극우로 가는 것을 제어를 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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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이정애 SBS미래부장과 인터뷰 중인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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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은 극우로서 당선된 게 아닙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보수적인 유권자 층이나 정치 엘리트 보수 정당이 전반적으로 극우화됐다고는 볼 수 없는데, 오히려 집권 후에 정치권력의 아주 중심부로 극우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 들어오게 되고, 그렇지 않은 오래된 보수 정치인들, 직업적 정치인들이 오히려 정치권력의 주변부화 되고 밀려나게 되는 경향이 지난 2~3년 사이에 너무 빠른 속도로 진행이 됐다 그런 과정을 되짚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12월 3일 비상계엄은 필연적으로 올 수밖에 없었던 결과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떤 역사적인 누적된 과정들이 있었고, 그 단계, 단계 우리 사회가 또 보수 정치가 다른 방향으로 나갈 기회들이 있었지만 오히려 극우적인 방향으로 오히려 더 깊게 들어가게 되면서 지금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 아닌가 분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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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극우세력이 요직이 가게 됐다고 하셨는데, 의도적이었다고 보시는지 아니면 많은 사람들이 관직에 안 들어가려다 보니 그런 분들까지 가게 됐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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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대선 당시, 그리고 출범 직후까지만 해도 ‘도어스테핑’도 하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한 것을 기억하실 텐데요. 원래부터 극우 정권을 만들려고 작정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집권 2년 차로 들어가면서 굉장히 기존에 보수 정권의 정치 리더들이 보여왔던 그런 보수성과는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모습들이 많이 보였다고 생각되고 그런 성향이 강해질수록 거기에 동조하지 않는 보수 엘리트 층이 정권에 참여하기를 꺼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왜 보다 더 합리적이고 전문적이고 민주적인 기본적인 합의가 있는 보수 엘리트들이 유입되지 않았는가를 생각하면 그 사람들의 거부 때문이라기보다 정권 자체가 그들을 수용하지 않는 그런 성향을 점점 띠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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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초기 매일 아침 출근길에 이뤄지던 ‘도어스테핑’(약식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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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 정치인들이나 정부가 더 극우화되지 않기 위해서는 뭐가 달라져야 하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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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에른스트 트뢸취(Ernst Troeltsch)라는 신학자, 철학자가 있는데요. 1919년에 쓴 <귀족>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 공화주의자 없는 공화국"의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질문과 씨름합니다. 당시 독일은 최초의 민주공화국인 바이마르 공화국으로서 가장 발전된 진보적 헌법을 가졌다고 자부를 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정부 각료들, 판사, 검사, 경찰 고위층 또 정치권력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민주주의자가 너무 없다, ‘공화주의자가 별로 없는데 법과 제도는 공식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다 이것은 굉장히 위험 한거다 쓰여 있는 대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경고한 거죠. 그런데 그 경고가 있고, 불과 십여 년 뒤 히틀러가 집권하고 독일의 민주공화국이 전복이 되게 됩니다. 이 사례만 봐도 법과 제도가 사회의 엘리트층에게 체화되어 있지 않으면 무력화하거나 유명무실하게 만들 수 있는 통로가 얼마든지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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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신학자이자 철학자, 에른스트 트뢸취(Ernst Troelts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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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민주주의가 미성숙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오래되면 될수록 점점 더 민주주의의 약점이 드러나게 되는데, 대표적인 것인 양극화, 포퓰리즘 같은 문제입니다. 굉장히 모순적인 것이죠. 양극적인 대결은 비민주적인 것은 아니에요. 민주주의의 본질인 거죠. 또 ‘국민’의 이름으로 정치를 하고 '국민'을 앞세우는 포퓰리즘이 자체로서 반민주적인 것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이러한 양극적인 대결이나 포퓰리즘적인 정치 요소들이 어떤 특정한 조건에서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자기 파괴적인 힘으로 변모를 할 수 있게 됩니다. 모든 민주주의 사회에는 ‘균열’이 있습니다. 우리가 모든 갈등을 균열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데, 거시적이고 구조적이고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어떤 사회의 큰 갈등을 ‘균열’이라고 부릅니다. 어떤 사회에서는 인종적인 균열이, 또 어떤 사회에서는 종교적인 균열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회에서는 지역적인 균열이 있고 어떤 사회에서는 이데올로기적인 균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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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균열이, 또 집단적인 갈등이,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말하자면 “상대나 상대 정당을 ‘절대로 있으면 안 되는 정당이다’ 혹은 저 정치인은 ‘없어져야 하는 정치인이야’ 그래서 저 정당이나 정치세력을 없앨 수만 있다면 민주주의나 법치를 심지어 훼손할 수도 있다 여기에까지 이르게 되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힘이 되는 거죠.” 이것이 민주주의가 공고한 나라인지 깨질 수도 있는 나라인지를 구분 짓는 굉장히 중요한 지표가 됩니다. 정치적인 갈등이나 대립, 적대가 고조될 때 민주적인 헌정체제 내에서 그 갈등이 표출되어야 하는 것이지 '그렇기 때문에 룰을 깰 수 있다'라는데 다수가 동의를 하게 되면 그 갈등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힘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여기에서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정치 엘리트의 태도입니다. 극단주의 연구에서 중요시하는 이론 가운데 ‘중심부 책임론’이라는 게 있습니다. 사회의 제도적인 중심부에 있는 장관, 대통령, 국회의원, 대학교수, 언론인, 종교지도자들 이런 사람들은 보통 극단적인 행동과 거리를 두죠. 그래서 테러, 폭력 행위를 안 하는 거죠.
그런데 중심부에 있는 세력들이 폭력적이고 테러적인 행동을 자신은 하지 않아도, 하게끔 고무하고 행동하는 것을 비호하는 것 같은 메시지를 보내면, 사회에 이런 극단주의적인 세력들이 갑자기 너무나 큰 정당성을 갖게 되는 것이죠. 이런 방식으로 이런 행동들을 계속 촉발시키는 경향이 있다. 얼핏 보면 제도권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하고 바깥에서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다른 세력들처럼 보이지만, 그런 행동을 하게끔 증폭시키는 책임이 많은 부분, 중심부 행위자들에게 있는 경우들이 많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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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중심부에 있는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은 자기에게 유리하다 느끼기 때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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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극우의 확산이나 파시즘의 확대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사회 중심부, 정치권력의 중심부에 있는 집단들인데 그 주장이나 이데올로기에 진심으로 동의하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거죠. 그것이 표가 되고, 돈이 되고, 자신들의 명성이나 대중성에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손을 잡는 거죠. 이들은 이와 같은 행동이나 주장들을 고무하고 정당화시켜 주고 증폭시키면서도 질서를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도적인 질서를 유지하면서 이익을 위해 이용하고 동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선을 넘게 되면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혼란과 폭력의 도가니에 빠져들게 되는 경우들이 많이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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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19일 서부지법 폭동 사태 이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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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이데올로기라고 이야기하고 실제로 극우나 파시즘의 이데올로기적인 요소, 내지 정치 신화라고 이야기하는 그런 요소들이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만 그것 외에 그것과는 상관없는 사적인 이해관계, 이런 것들이 그 안에서 많이 움직이고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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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제 비상계엄 선포 이후 나타났던 시민들의 이야기로 옮겨가 보려 하는데요. 응원봉 집회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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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시위와 같은 시민들의 정치 참여 행동을 20년 넘게 연구한 사람으로서 이번에도 중요한 집회에는 빠지지 않고 나가서 촬영하고 기록하고 얘기를 나눴는데요. 집회의 구성원을 보면 12월 초, 중순만 하더라도 20대, 30대 여성들과 50대 남녀가 쌍봉형이었어요. 그런데 젊은 층들이 이후에 계속 많이 나오면서 2, 30대 남성들의 비중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를 보입니다.
참여 동기는 다를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남녀 할 것 없이 20, 30대 젊은 층들이 지난 두 달 동안 꾸준히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민주주의와 사회적인 개혁 방향을 위해서 많이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많이 느낀 것이 참여한 젊은 세대가 굉장히 절실하구나 ‘아파트’ 노래 부르면서 뛰고 춤추고 즐거운 것도 사실이지만 거기에 굉장한 진지함이 있다 절실함이 있다 느꼈는데요. 가장 늦은 시간까지, 가장 추운 시간까지 남아 있는 사람들이 과거의 독재를 겪었던 세대가 아니라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11시, 12시 넘어서 그 살을 에는 손이 얼어붙는 추위 속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킨 세대들이었다는 사실에 저는 사회학자로서 뭔가 의미 있는 우리 시대를 읽을 수 있었다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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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젊은 층은 정치, 사회 이슈에 크게 관심이 없는 것 아닌가 했었는데 집회에 젊은 세대가 많이 참여하면서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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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대가 정치나 사회문제에 관심이 너무 적다 그런 얘기를 많이 해왔고 20,30대분들도 자신들은 그런 세대인 것 같아요 얘기를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치 참여의 관점에서 본다면 2,30대가 정치 참여가 적었는가?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2010년대 내내 전체적으로 투표율이 상승해 온 추이가 있습니다. 더 정확하게는 2000년대 중반 이후 2020년 총선까지 계속 이제 투표율이 오르는데 그때 투표율의 증가 폭이 가장 컸던 연령대가 2,30대예요.
또 2016년, 2017년 촛불 집회 때도 ‘정치적 효능감’이라고 해서 ‘내가 정치에 참여를 하고 내 의사를 표현함으로써 뭔가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도 가장 큰 폭으로 높아졌던 게 2,30대 청년층이에요. 그런 경험을 가진 연령대가 현재 20대 중반에서 한 40대 초반정도까지로 볼 수 있을 텐데요. 2021년, 2022년 이후에 투표율이 낮아지고 있습니다. ‘대통령감이 없다’라는 응답도 높아지고요. 그때가 오히려 ‘정치에 대한 전반적인 실망이 커져 있는 상태다’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젊은 층의 비정당적인 방식의 사회참여는 계속해서 활발했다, 예를 들면 ‘기후정의 행진’이라든지 ‘차별금지법 제정 캠페인’이라든지, ‘퀴어 퍼레이드’, ‘세월호 참사 추모 행동, ‘이태원 참사 추모’, ‘우크라이나 전쟁에 반대하는 평화 집회’ 같은 여러 가지 국내적인, 국제적인 정치, 사회 이슈에는 젊은 층들이 상당히 활발하게 참여를 해왔습니다.
그래서 12.3 계엄이 일어나고 평소에 정치나 사회 이슈에 관심이 전혀 없던 청년들이 갑자기 광장으로 뛰쳐나온 게 아니라 그런 이슈에 관심이 많이 있었지만 제도 정치에 여러 가지 실망과 불만이 있어 다른 방식으로 제도 정치의 저변에서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고 있던 청년들이 제도 정치, 국가 정치의 무대 위로 일시로 올라오게 된 거죠. 젊은이들이 어디에서 온 것이냐? 갑자기 집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실은 많은 곳에 이미 있었다 그렇게 볼 수 있고요. 또 가장 중요한 부분은 지금의 젊은 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민주주의 사회였지 않습니까? 너무 당연하기 때문에 오히려 훼손되거나 부정된다는 상상을 못 한 거죠. 그렇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훼손되는 것을 더 아프게 느끼고 내가 뭔가를 해야 하는 것이구나를 느끼게 된 시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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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럼에도 남태령의 농민 시위에서도 그렇고 젊은 여성들이 더 다양한 주체들과의 연대를 보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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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로 나눠서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요. 하나는 우리가 2030 남성, 2030 여성 더 좁혀서 이대남, 이대녀 이런 식으로 단순하게 구분을 하는 것은 현실에 부합하지도 않고 현실을 잘 풀어가는 데 도움이 되는 접근법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구 집단을 그렇게 단순하게 규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사회학자로서 세대를 접근하는 올바른 접근법은 ‘세대 내의 관계’를 잘 봐야 한다 이게 하나의 강조점이 될 것 같고요.
다른 강조점은 그런 전제 위에서 특히 20대, 30대 여성들이 모든 세대를 아울러서 가장 주도적이고 헌신적이고 가장 개방적이고 연대적인 준비가 되어 있는 하나의 집단적인 정치 주체로서 우리 사회에 크게 등장을 했다는 사실, 거기에 이르게 된 과정이나 20대, 30대 여성들이 어떤 인식을 갖고 있었고 어떤 경험을 했고 어떻게 이와 같은 집단적인 행동의 역량을 축적해 올 수 있었는가를 우리 사회가 이해하는 것은 필요하다 이게 두 번째 강조점이 될 것 같아요.
10여 년 동안 한국 사회의 젊은 여성들은 그 어떤 집단보다 적극적이고 의식적으로 사회적인 여러 이슈에 대해 높은 의식을 가진 집단으로 존재했고 실제로 여러 가지 행동에 참여한 경험이 축적돼 있는 인구 집단입니다.
우리 사회에서의 성차별 경험, 일상적인 성폭력의 위험 같은 우리 사회의 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이 출발점이 되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러한 근저의 문제의식, 민감성 여러 다른 사회의 문제나 이슈들에까지 연결될 수 있는 토대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예를 들어 여성으로서의 평등과 안전과 인권의 문제에 관심을 갖다 보니 아… 장애인들도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구나… 농민들이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구나… 이주자들도 이런 차별을 겪고 있구나 성수자도 이런 문제를 겪고 있구나 하는 식으로 연결될 수 있는 하나의 체험적인 인식적인 토대가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번 탄핵 집회에서 우리가 본 것도 그런 연대적인 행동들이 나타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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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말 남태령 농민시위에도 적극 참여한 2030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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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앞에 언급한 것을 조금 더 보완하자면 탄핵 집회에는 2030 여성, 우익 집회에는 2030 남성 이런 식으로 이상한 구분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지난번 1.19 법원 폭동에서 구속자의 절반이 20대, 30대 남성이었다 이거를 보고 20대 남성, 30대 남성이 전반적으로 이와 같은 성향을 가질 것이라고 완전히 논리적인 오류를 범하는 경우들도 많이 봤는데요. 전혀 그것과는 상관이 없고요. 투표 성향, 정치 성향을 보더라도 20대, 30대 여성과 20대, 30대 남성을 너무 단순하게 대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부합하지 않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2022년 대선 당시 20대, 30대 남성의 50%가 윤석열 후보를 찍었다는 것은 사실인데 그 당시에는 30대 여성의 43%, 20대 여성의 33%도 윤석열 후보를 찍었습니다. 당시에는 지금의 극우적이고 반민주적인 모습이 그려지기 전이고 여러 가지가 잘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막연한 기대를 갖고 젊은 유권자들이 남성이 더 많기는 했지만 여성 유권자들도 지지자들이 전무하지 않았다는 것이고요. 출범 이후 대통령 국정운영 긍정평가가 낮게 나타났을 때도 남녀 할 것 없이 젊은 층의 대통령 긍정 평가가 대단히 낮았습니다. 남, 여 할 것 없이 10%대 정도 나왔었기 때문에 여성만이 실망한 것이 아니라 젊은 남성들도 마찬가지로 실망을 했다 말씀드릴 수 있고요.
최근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탄핵 반대의 여론도 70대 이상이 계엄 직후부터 절반이상이었고요. 1, 2주가 지난 후부터 60대 분들이 더 많아지는 쪽으로 이동하셨는데 최근까지 탄핵 반대 여론이 가장 낮은 연령대가 20,30대 젊은 층이고 그중에 20,30대 남성 역시 비중이 높지 않다는 점 보완적으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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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욱 교수는 마지막으로 1월 19일 법원 폭동 사건은 우리 사회에 법적이고 제도적인 의미에서 헌정을 파괴한다는 측면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어떤 도덕적인 합의, 사회 여러 제도의 저변에 놓여있는 근본가치에 심각한 상처를 입힌 사건이라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추구하는 사회의 모습이 실현되지 않는다고 해서 제도적인 전제 자체를 공격하는 행위가 이뤄진다면 앞으로 우리 사회의 모든 공존 제도는 언제든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면에서 심각한 문제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었는데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지금 많이 언급되는 대통령제냐 내각제냐 하는 논의도 장기적으로는 계속 이어가야 하지만 우리에게 지금 더 시급한 것은 12.3과 1.19로 전조현상이 보인 폭력적이고 파시즘적인 최악의 상황이 오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많지 않은 극우 정치 연구자의 주장이라 더 심상치 않게 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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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정애 기자, calee@sb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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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DF 다이어리는 SDF 참가자 중 수신 동의하신 분들과 SDF 다이어리를 구독한 분들께 발송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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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애 기자 : 다양한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마음을 모으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는 없다 믿으며 SBS D포럼을 총괄 기획해 오고 있습니다. 사회부, 국제부, 경제부, 시사고발프로그램 ‘뉴스추적’ 등을 거쳤으며 2005년부터 ‘미래부’에서 기술과 미디어의 변화, 그리고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어떻게 다르게 같이 살아가야 할 지 고민해 오고 있습니다.
류란 기자 : 기술의 발전과 그로 인한 사회 변화에 관심 있습니다.
정준기 PD : 프로듀서로서 TV와 온라인, 제작과 마케팅의 길을 두루두루 거쳐 2025년부터 SDF에 둥지를 트게 되었습니다. 제작 사업의 다양한 노하우와 경험을 살려 최고의 브랜드 SDF를 한층 더 멋지게 빛내는 데 보탬이 되고자 합니다. Cool SDF~~!!
박준석 프로그램 매니저 : Welcome to the home of feel-good thinking! SDF의 글로벌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임세종 촬영감독 : 현재 SDF 팀의 촬영 감독을 맡고 있습니다. 사람들과 협업을 중요시하는 프리랜서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보연 아트디렉터 : SDF의 그래픽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SDF의 지식을 레터와 콘텐츠를 통해 많은분들과 공유하고 공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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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여는 담대한 도전 SBS SDF │ sdf@sbs.co.kr
서울시 양천구 목동서로 161 SBS방송센터 보도본부 논설위원실 미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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